6·25 동란이 터졌다. 고향을 등진 피란민 행렬이 이어졌다.그 와중에도 교육열은 꺾이지 않았다.전쟁 초 무기휴학 또는 수업정지가 내려졌다. 당시 문교부는 그러나 1·4 후퇴 후인 1951년 1월20일 통첩을 내고 피란지 소재 각급 학교에 학생들을 수용코자 했다. 1월26일에는 전시교육방침을 제시했다. 정기 교육이 불가능해도 2월10일 개학하겠다, 시설이 부족하면 임간·개천 주변·광장 등지에서 수업을 계속하겠다고 알렸다. 이후 ‘전시하 교육 특별조치요강’을 발표, 피란 특설학급 개설을 지시했다.‘전시교육’은 그렇게 시작됐다.